인물도 물과같아야

황진이

서경덕의 죽음을 노래한 시조

스승을 보내는 제자의 노래

입력시간 : 2019-01-31 08:40:08 , 최종수정 : 2019-02-04 11:55:29, 김태봉 기자



인걸도 물과같아야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거든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아야 가고 아니 오노매라

 

황진이 (본명은 진, 기명은 명월) 중종때의 송도 명기,

시 서화 음률에 뛰어남

 

황진이

스승 서경덕의 죽음을 노래함

 

도학군자로 이름을 날리던 화담 서경덕을 유혹하기도 했다.황진이의 일생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1489~1546)일 것이다. 황진이는 당시 도학군자로 이름을 날리던 화담 선생이 진실한 군자인지 거짓 군자인지 밝혀보고자 했다. 모든 남성이 황진이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화담선생만큼은 그녀의 유혹을 뿌리쳤다. 화담선생의 높은 덕망 앞에 황진이는 감복하여 그의 제자가 되기를 자청하고 자신과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이라 칭송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화담 서경덕이 어렸을 때의 일이다. 어머니가 나물을 뜯으러 내보내면 서경덕은 매일 빈 바구니만 가지고 돌아왔다. 어머니가 왜 나물을 한 줌도 뜯어오지 않느냐?” 하고 묻자, “나물을 뜯으러 들판으로 나가니 종달새가 날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달새가 그제는 땅에서 1치쯤 날아오르더니 어제는 2치쯤 날아올랐고 오늘은 3치쯤 날아올랐습니다. 새가 나는 모양을 보고 그 이치를 생각하느라 늦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어릴 때부터 남달랐던 서경덕은 늦은 나이인 14세에야 개성의 어느 선생에게서 글을 배웠다. 16세에는 대학을 읽은 뒤 그 뜻을 깨닫고는 기쁨에 겨워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34세가 되던 해 그는 남쪽의 여러 곳을 유람하기 위해 길을 떠났고, 그다음에는 제자 토정 이지함과 함께 지리산을 찾아갔다가 남명(南冥) 조식을 만나게 된다.

 

서경덕은 43세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습 도중 개성으로 돌아와 송악산 자락의 화담 옆에 초막을 짓고 학문에 열중하였다. 서경덕의 호인 화담, 꽃 피는 연못은 바로 이곳 지명에서 연유하였고, 그때부터 그의 이름이 널리 퍼져 나가게 되었다.

 

그는 조선의 수많은 성리학자들 중에 스승이 없는 특이한 인물이었다. 서당에서 겨우 한문을 깨우치는 정도의 교육밖에 받지 못한 서경덕의 진정한 스승은 자연과 책이었다. “스스로 깨달아 얻는 즐거움은 결코 다른 사람이 짐작할 바가 아니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서경덕은 그런 연유로 아주 독특하고 진귀한 학문적 업적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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