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의 외교 정책

명후금전쟁 가운데 조선의 운명

명의 파병 요청과 전략

모호함으로 국난의 위기 극복

입력시간 : 2019-01-21 21:37:01 , 최종수정 : 2019-01-25 08:53:52, 김태봉 기자


광해군의 외교정책

 

명후금전쟁-조선의 운명

 

임금이 전쟁터로 떠나는 총사령관에게 보낸 밀지(密旨)

그런데 밀지의 내용은

때를 보아 투항하라

-광해군 일기-

임금은 이기라고 하지않았다. ‘투항하라고 했다

이상한 밀지

임진왜란의 광풍이 조선을 휩쓴지 얼마 지나지 않은 1619, 후금과 전쟁 중이던 명나라에서 조선군 파병을 요청했다.

출벙을 외치는 대신들

임진왜란때 구원해 준 망극한 은혜가 있으니 나라가 망할지언정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광해군 일기-

하지만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 기병을 중심으로 전투력을 응집해 여진족을 통일한 후금(後金) 그리고 중원의 오랜 강자 명, 이 두 나라가 맞부딪힌 1618년 명 후금 전쟁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전쟁의 승패.

 

동북아시아 패권을 장악한 명나라를 거스를 수도 엄청난 군사력을 앞세운 후금과 적이 될 수 도없는 난감한 상황 그리고 어려운 선택을 앞둔 조선의 임금은 왕세자 시절 임진왜란으로 인해 처참히 짓밟히는 백성들의 삶과 무너지는 나라의 참상을 온몸으로 체험했던 광해군.

 

마침내 내린 결정

외국어에 능통한 통역관 강홍립을 총사령관으로 임명 그리고 은밀히 내린 명령.

명나라 장수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 말고 오직 패하지 않을 방도를 구하는데 힘쓰라.“

-광해군일기-

명군과 함께 싸우다 적에게 포위된 조선군은 후금의 강화요청에 순순히 항복 총사령관 강홍립은

후금에게 조선의 입장을 밝혔다.

 

조선은 후금에 대한 원한이 없고 지금 출병한 것은 부득이해서다.”

-이민환<자암집>-

명이냐? 후금이냐 명분이냐 실리냐?

그 간극을 유연하게 조절했던 광해군의 외교정책 그 외교정책을 담은 밀지

때를 보아 투항하라

광해군의 뜻을 확인한 후금은 조선 침공을 유보 조선은 전쟁의 위협에서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은 폐위되고 그의 외교정책 또한 폐기되어 버린다

후금이 세운 청나라는 1636년 조선을 침략 조선은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의식을 치러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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